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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연재] 타오르는 달빛은 멈추지 않는다

3화) 아름답고 매혹적인 쌍둥이

by 매냐씨 2026. 7. 22.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눈부신 미소를 띈 노아르와 이벨린이 나란히 이안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라그리스와 홀던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아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안은 얕게 한숨을 내쉰 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제국의 빛나는 두 분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요, 발드라이크 소공자.”

노아르는 활처럼 휘어진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 하나에 주변의 공기마저 밝아진 듯,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머물렀다.

 

뤼투아 전투에서의 활약상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동년배라고 알고 있는데, 소공자께는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노아르의 웃음기 어린 눈이 이안을 찬찬히 훑었다. 이안은 속을 궤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저도 소개시켜 주셔야죠?”

곁에 서 있던 이벨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아르의 옷깃을 슬며시 잡아당겼다.

이벨린 황녀를 만난 적이 있던가?”

이안이 무덤덤한 얼굴로 이벨린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 황녀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성년식 때 한번 뵈었습니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회에서 좀처럼 뵐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앞으로는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벨린은 물빛을 닮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이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이안은 그녀의 매혹적인 눈빛에 어쩐지 위험한 느낌이 들어 시선만 살짝 거둔 채 정중한 미소를 유지했다.

 

누님, 소공자께서 곤란해 보입니다. 너무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낮게 깔리는 부드러운 음성에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밀빛 금발을 흩날리며 로이드 2황자가 상냥한 미소를 띄고 서 있었다. 이벨린은 드레스 자락을 꽉 움켜쥐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왔구나, 로이드.
있는 줄도 몰랐네. 우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가던 길 계속 가려무나.”

제가 가려던 길이 여깁니다, 누님.
형님은 여전하시군요.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 발드라이크 소공자가 아니라 형님 같습니다.”

 

로이드는 이벨린의 견제 따위 깨끗이 무시하고 노아르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노아르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로이드에게 화사한 미소를 보냈다.

하하하, 나름 덜 치장하고 왔는데도 타고난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너는 꽤 신경을 썼는지 오늘은 봐 줄만 하구나.”

로이드의 입가에 경련이 살짝 일었지만 끝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쉽게도 제게는 외양에 공들일 여유가 없답니다.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아직도 너무 많아서요. 소공자께도 제가 배움을 좀 받고…”

 

로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아르가 이안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말했다.

아쉽게도 소공자는 나와 선약이 있단다. 그렇지, 이안?”

갑자기 친근하게 구는 노아르의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헤실거리는 노아르의 모습에 이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았다. 정치 싸움에 말려드는 것은 절대 사절이지만, 여기서 감정을 드러낸다면 대공 승작을 앞 둔 공작가에 누가 될 것이었다. 여기서 거절하는 순간 괜한 소문만 돌 뿐이었다.

“…, 황자 전하.”

못마땅한 눈빛의 이안을 쳐다보며 노아르는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이를 악문 채 시선을 돌렸다.

 

냉랭한 분위기를 읽은 이벨린이 이안의 옷깃을 잡아 끌었다.

답답해서 잠시 바람을 쐬고 싶군요. 소공자, 함께해 주시겠어요?”

그래, 좋은 생각이군. 이벨린을 부탁하지.”

노아르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니 이안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황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마침 두 황자의 신경전에 머리가 지끈거리던 차였다. 이안은 이벨린의 손을 정중히 잡고 베란다로 향했다.

 

이대로 이벨린에게 기회를 뺏길 수 없다는 생각에 로이드가 두 사람을 따라 나서려 했다. 그때, 노아르가 로이드의 팔을 붙잡았다.

눈치는 있는 줄 알았는데.
젊은 남녀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다른 즐거움을 찾아 보려무나.”

형님!”

로이드의 미소가 처음으로 살짝 일그러졌다.
공개된 자리에서조차 거리낌 없이 선을 넘는 노아르의 태도에 로이드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 무슨 천박하고 오만한 태도인가.’

 

아니면, 내게 할 말이 남았나? 난 없는데.”

노아르는 황금으로 세공된 고블릿을 들어 로이드의 눈 앞에서 흔들었다. 찰랑이는 와인 너머로 보이는 노아르의 표정은 끝내 읽을 수 없었다.
로이드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천천히 와인을 들이켜던 노아르의 눈빛에서 웃음기가 스르르 걷혔다.

, 시시해.”

와인잔을 내려놓은 노아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화사하게 웃으며 뒤에서 숨죽이고 서 있던 라그리스와 홀던을 쳐다봤다.

곧 황자궁으로 초대하지. 소공자와 함께 와.”

영광입니다, 전하.”

곧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노아르가 자리를 떠나자, 라그리스와 홀던은 굳은 표정으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그 눈부신 미소 뒤에 저런 독이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아직은 차가운 밤공기에 이벨린은 가녀린 어깨를 살짝 떨었다. 그녀의 떨림을 느낀 이안은 망토를 벗어 이벨린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망토를 살짝 움켜쥐면서 이안을 올려다보며 감사의 눈인사를 보냈다.

"상냥하시네요."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천천히 내려앉자 푸른 눈동자가 더욱 신비롭게 일렁였다.  

이안은 달빛 아래에서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그녀의 미모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지만, 곧 설명하기 어려운 거부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번에 발드라이크가 대공 작위를 받으면, 명실공히 제국 최고의 가문이 되는 겁니다.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니 기쁘시겠어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라 섣불리 말씀드리기가 주저됩니다. 저보다는 아버님께서 바라시던 것입니다.”

이벨린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이안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너무 겸손한 것도 죄입니다. 소공자는 충분히 자신만만하셔도 됩니다. 그 큰 공을 세우셨고 곧 대공가를 이어 받으실테니…”

달콤한 향기가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히는 듯한 불쾌감이 밀려왔다.

 

발드라이크 대공비는 그에 견줄 만 해야겠죠.”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손등으로 향했다.
단단하게 솟은 힘줄까지도 그녀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벨린은 손끝이 스칠 만큼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그 자리는 최고의 여인에게 어울리는 곳이죠.”

이벨린은 가녀린 손가락으로 이안의 턱을 슬며시 잡아당겨 자신을 쳐다보도록 했다.
푸른 불꽃이 일렁이듯 열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그녀의 눈동자에 이안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거부감을 느꼈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혔다.

 

소공자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황녀를 보며, 이안은 자신의 진심을 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안은 이벨린의 손을 잡고는 천천히 자신의 얼굴에서 떼어 냈다. 그의 옅은 갈색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황녀님, 발드라이크에는 어엿한 장자가 있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저에게 하실 말씀이 아닙니다.”

이안은 흔들리는 이벨린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황녀님께 필요한 사내는 제가 아닙니다.”

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전 황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벨린은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드는 것도 모른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 소공자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내가 소공자와 어찌해보려는 것이 아니야! 내가 친히 최고의 여인을 소개하려고…”

미간을 찌푸린 이벨린이 순간 말을 잇지 못하자 이안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제가 착각한 것이라면 정중히 사죄드리겠습니다. 전장에서만 지내다 보니 예법이 서툴러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이벨린은 귀끝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매서운 눈길로 그를 쏘아봤다.
평소의 성정이었다면 한바탕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삼아야 하는 제국 최고의 남자였다.

 

이벨린은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스렸다. 잠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눈동자에 햇살 같은 미소가 스며들었다.

소공자의 사과를 받아들이겠어요. 제가 오해할 행동을 했다면 그건 친근함의 표시였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추워서 전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이벨린이 몸을 휙 돌리자 이안의 망토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벨린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베란다를 떠나 버렸다. 차갑게 식은 푸른 눈동자에 서늘한 마력이 일렁였다.

 

황녀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차갑게 굳어 있던 이안의 입술이 느리게 호선을 그렸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황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어쩐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망토를 툭툭 턴 이안은 난간에 몸을 기댔다.
이미 벌어진 일을 걱정하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달빛이 내려앉은 황실 정원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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