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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로판5

3화) 아름답고 매혹적인 쌍둥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눈부신 미소를 띈 노아르와 이벨린이 나란히 이안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라그리스와 홀던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아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안은 얕게 한숨을 내쉰 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제국의 빛나는 두 분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요, 발드라이크 소공자.”노아르는 활처럼 휘어진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 하나에 주변의 공기마저 밝아진 듯,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머물렀다. “뤼투아 전투에서의 활약상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동년배라고 알고 있는데, 소공자께는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과찬이십니다.”노아르의 웃음기 어린 눈이 이안을 찬찬히 훑었다. 이안은 속을 궤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 2026. 7. 22.
24화) 감시자 나뭇잎 사이로 잔잔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따라 야영지에는 새벽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모닥불은 잿빛 불씨만 희미하게 남긴 채 꺼져가고, 교대를 선 병사들은 말없이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고요한 풍경 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보초를 선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멋스럽게 가지를 뻗은 전나무를 흘깃거렸다. 굵은 가지 위에 십여 마리의 세눈박이 까마귀들이 앉아 야영지를 빈틈없이 훑고 있었다. 각자 다른 방향을 응시하며 탐색하는 보라빛 눈동자들에 병사들은 소름이 돋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전장을 떠돌던 그들이지만, 언제 봐도 기분 나쁜 건 한결 같았다. 칼리스의 막사를 멀리서 조용히 응시하던 까마귀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더니 그의 막사와 가까운 나무로 날아갔다. 가지에 앉으려던.. 2026. 7. 20.
2화) 깨어난 뤼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고 헤일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헤스티아, 날 부축해 다오.” 헤스티아는 헤일로에게 가운을 건넨 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그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성인 남자를 홀로 부축하기엔 버거웠지만, 몇 달 사이 야윈 헤일로의 몸은 놀랄 만큼 가벼웠다. 두 사람은 선대 가주들의 초상화가 늘어선 긴 회랑을 천천히 걸었다. 붉은 융단 위로 두 사람의 발소리만 낮게 울렸다. 회랑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흑철문이 나타났다. 가주 외에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금역.흑철문 한가운데에는 브렌하임의 상징인 피닉스가 새겨져 있었다. 섬세하게 조각된 깃털 하나하나에서는 당장이라도 타오를 듯한 화염의 기세마저 느껴졌다. 문 앞에 선 헤일로는 잠시 숨을 고른 뒤 헤스티아를 향해 미소 지었다. 헤스티아는 .. 2026. 7. 15.
1화) 절망은 언제나 나의 곁에 똑. 똑. 짧게 두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갑지 않은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집사 베른의 알림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헤스티아가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들어와요.” 어두운 표정의 베른 뒤로, 콜커스 상단주 아서가 들어왔다. 그는 예의를 차려 인사했지만, 눈동자에는 무심한 거리감이 옅게 깔려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시죠.”헤스티아는 주눅 들지 않으려는 듯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언제 봐도 아름다우십니다, 헤스티아 영애.”아서는 느긋한 시선으로 그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입가에는 사람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 시선은 값비싼 물건을 감정하듯 노골적이었다.“브렌하임은 몰락해도 영애의 가치는 여전하군요. 영애의 아름다움을 저 드레스가 다 담.. 2026. 7. 15.
23화) 널 지키는 방법 짙은 어둠이 내린 막사 안.아무 말없이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뒤로 촛불만 잔잔하게 흔들렸다. 장막 너머로 스며드는 밤바람이 희미하게 불꽃을 흔들 때마다 두 사람의 그림자도 함께 일렁였다.아스티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붉어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훔쳤다.놀란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드레스를 찢어버리던 칼리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언제나 냉정하던 남자가 그렇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스티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웃지?”적막을 깨고 칼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하, 미안. 아까 드레스를 찢던 모습이 생각나서.”천이 뜻대로 찢어지지 않자 결국 칼까지 꺼내 들었던 남자였다. 그 진지한 표정으로 드레스를 난도질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아스티나는 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 2026.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