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연재] 심장이 붉게 물들면25 24화) 감시자 나뭇잎 사이로 잔잔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따라 야영지에는 새벽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모닥불은 잿빛 불씨만 희미하게 남긴 채 꺼져가고, 교대를 선 병사들은 말없이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고요한 풍경 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보초를 선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멋스럽게 가지를 뻗은 전나무를 흘깃거렸다. 굵은 가지 위에 십여 마리의 세눈박이 까마귀들이 앉아 야영지를 빈틈없이 훑고 있었다. 각자 다른 방향을 응시하며 탐색하는 보라빛 눈동자들에 병사들은 소름이 돋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전장을 떠돌던 그들이지만, 언제 봐도 기분 나쁜 건 한결 같았다. 칼리스의 막사를 멀리서 조용히 응시하던 까마귀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더니 그의 막사와 가까운 나무로 날아갔다. 가지에 앉으려던.. 2026. 7. 20. 23화) 널 지키는 방법 짙은 어둠이 내린 막사 안.아무 말없이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뒤로 촛불만 잔잔하게 흔들렸다. 장막 너머로 스며드는 밤바람이 희미하게 불꽃을 흔들 때마다 두 사람의 그림자도 함께 일렁였다.아스티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붉어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훔쳤다.놀란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드레스를 찢어버리던 칼리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언제나 냉정하던 남자가 그렇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스티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웃지?”적막을 깨고 칼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하, 미안. 아까 드레스를 찢던 모습이 생각나서.”천이 뜻대로 찢어지지 않자 결국 칼까지 꺼내 들었던 남자였다. 그 진지한 표정으로 드레스를 난도질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아스티나는 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 2026. 7. 13. 22화) 황제의 선물 시온이 다녀간 뒤부터 칼리스는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황제가 보낸 선물이 평범할 리 없었다.'도대체 뭘 보낸 거지? 그 미친 놈이.' “주군, 한 각(15분) 정도 달리면 야영할 만한 적당한 곳이 나옵니다.”주군의 불안한 기색을 눈치챈 카시안은 서둘러 근처의 야영지를 물색한 뒤 입을 열었다. 아직은 더 달려야 했다.하지만,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칼리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영지에 도착한 제국군은 서둘러 짐을 풀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천막을 세워 나갔다. 일사분란한 모습에 공주들은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완성된 천막으로 안내된 공주들은 탁자 위에 황제의 선물 상자들을 놓고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아무도 .. 2026. 7. 8. 21화) 불청객 제국군은 숲을 가로질러 빠르게 내달렸다. 울창한 나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 거센 말발굽 소리만이 고요한 숲을 뒤흔들었다. 고삐를 쥔 카시안의 손에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제 품 안에 있는 벨로나의 존재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괜히 답답해진 카시안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이죠?” “계속 신경 쓰였는데.”잠시 침묵하던 벨로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주군과 아스티나, 언제부터지? 알고 있었어?” 카시안은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설마 이런 질문이 돌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무슨 소리십니까? 제가 뭘 알고 있다고…” “시치미 떼지 마. 내가 눈치 챌 정도인데, 네가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난처함.. 2026. 7. 6. 20화) 한 걸음 더 바쁘게 서두른 탓에 제국군은 약속한 반 시진보다 일찍 출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전투의 흔적이 남은 이 곳을 빠르게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전히 칼리스는 아스티나와 함께 막사에 머물러 있었다. 곁눈질로 주군의 막사를 살피던 카시안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불안감까지 겹치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분명히 자신의 충언에 고개를 끄덕였던 주군이, 마음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모습이 못 마땅했다. 칼리스를 부르려던 카시안은 짧게 혀를 찬 뒤 말을 돌렸다. 지금 주군을 불렀다가는 눈치 없다고 타박이나 받을 것이다. 카시안은 주변을 한 번 더 확인하기로 했다. 공주들의 막사까지 온 카시안은 눈앞의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2026. 7. 1.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