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냐씨 2026. 8. 3. 08:43

 

서둘러 출발한 칼리스 부대는 반나절만에 그레이우드 숲 어귀에 다다랐다.
이 숲만 지나면 드디어 제국령에 들어선다.

 

그런데 어쩐지 말들이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초조하게 콧김을 내뿜던 말들은 자꾸 뒷걸음 쳤다.

숲도 여느 때와는 달리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바람조차 숲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듯 적막했다.

숲에서 풍기는 위험한 분위기에 결국 카시안이 말 머리를 돌려 칼리스에게 다가왔다. 

 

 

주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함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칼리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숲 속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눈박이 까마귀를 잃은 메레디아가 허튼 짓을 했을 수도, 아니면 황제가 변덕을 부린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함정임을 알면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숲을 돌아가는 것은?”

카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시다시피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레이우드 숲을 포기하면 힐랄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 저희는 어떻게 한다고 해도 공주님들은 힘드실 겁니다.”

칼리스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개수작인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빌헬름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네 생각은 어떻지?”

우선 선발대를 보내 정찰을 하심은 어떠십니까?”

칼리스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대로 지체할 수도 나아갈 수도 없다. 결정을 해야만 했다.

좋다.
빌헬름, 기욤, 그로이스, . 네 명이 나와 함께 들어간다.”

칼리스는 비장한 눈빛으로 카시안을 쳐다봤다. 

카시안. 넌 남아서 공주님들을 보호해. 절대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숲에 들어와선 안 돼.”

제가 선발대로 가겠습니다. 주군께서 남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칼리스가 고개를 돌려 숲을 천천히 훑어봤다. 짙은 안개 사이로 마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메레디아가 숲에 장난질을 한 것 같다. 그걸 막을 수 있는 자는 나뿐이지.
까마귀들 숫자는 줄여 뒀으니 당분간 몸을 사릴 것이다. 내가 없을 때 공주들을 지킬 사람은 너뿐이다.”

 

카시안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십시오.”

걱정스러운 그의 눈빛에 칼리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왠일이지? 네가 내 걱정을 다하고? 숲에 진짜 험한 것이 있나 보군.”

칼리스가 카시안의 어깨를 꽉 쥐었다.

너나 조심해. 또 메레디아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말고. 금세 끝내고 오지.”

 

칼리스는 공주들의 마차를 한 번 더 쳐다봤다.

그는 말고삐를 마차 쪽으로 돌리려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피를 먹였고 아스티나가 완쾌 중이니 별 일은 없을 것이다.

숲에 들어가기 전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결국 말머리를 돌렸다. 아스티나를 보게 되면 어쩐지 숲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카시안은 선발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칼리스를 믿지만 도무지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황제의 변죽이 하루 이틀일은 아니었지만, 그 불길함은 점점 선명한 예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카시안과 남은 부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레이우드 숲 입구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선발대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어 짐은 풀지 않은 채 긴장을 유지했다.
공주들도 마차 내에 머물기로 했다. 답답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선발대가 숲으로 들어간지 반 시진이 지났지만, 숲은 여전히 짙은 안개를 뿜어내고 있을 뿐 죽은 듯 고요했다. 오히려 안개가 점점 주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결국 카시안은 부대원들에게 서른 걸음 남짓 숲에서 물러날 것을 명령해야만 했다.

 

부대원들이 부산스럽게 재정비를 하고 있을 때, 살기를 느낀 카시안이 큰소리로 외쳤다.

기습이다! 모두 자리를 지키고 준비해라!”

카시안은 정예병을 이끌고 공주들의 마차를 에워쌌다. 온 신경이 사방을 향해 곤두섰고 그의 시선이 안개 너머를 훑었다. 그는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검 손잡이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였지만, 그의 감각은 예민하게 벼려져 있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 거세게 뛰는 심장소리만 들렸다.

그때였다.

숲 속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검은 옷을 입은 사내 수십명이 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목에 황가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카시안은 단번에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황제 직속 친위대였다.

씨발, 황제가 우리에게 사냥개를 보내다니!”

카시안의 곁에서 마차를 보호하던 칸델이 거칠게 반응했다. 부대원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음을 카시안은 알아차렸다.

잡생각말고 공주님들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카시안은 큰 소리로 흔들리던 부대원들의 사기를 단숨에 다잡았다.

하지만 그는 긴장으로 손이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떨리는 손은 끝내 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

순식간에 친위대들이 마차를 향해 달려들며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둘은 병사들을 묶어 두고, 셋은 마차를 향해 파고들었다. 망설임도, 불필요한 움직임도 없었다.  

막아!”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친위대는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거친 일격을 막아내면서 마차까지 지켜야 했기에 모두의 신경은 극한까지 벼려졌다.

 

-!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친위대 한 명이 순식간에 마차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지붕을 꿰뚫듯 칼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꺄앗!”

이 새끼가!”

슈웅-! -!

놀란 카시안이 재빠르게 지붕에 올라타 친위대를 저지했다. 카시안이 자리를 비운 틈에 다른 친위대들이 마차 양쪽 문을 억지로 열어 마차에 올라타려 했다.

 

공주들을 지켜!!”

카시안의 일갈에 놀란 칸델이 급하게 마차에 올라탄 친위대를 저지했다.
하지만, 막지 못한 다른 친위대가 결국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꺄아앗!”

이씨!”

공주들의 비명소리에 마음이 다급해진 카시안이 친위대의 검날을 거침없이 움켜쥔 뒤 발로 차 그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손에 피가 흥건히 번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카시안은 곧장 마차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마차에 들어가자마자, 디에나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던 친위대의 턱을 사정없이 날렸다. 쓰러진 친위대의 머리채를 끌고 밖으로 내보내려 하자, 또 다른 친위대가 칼을 휘두르며 마차로 들어오려 했다.

이씨! 공주들을 다 죽일 셈이야!”

다급하게 칼등으로 방어하던 카시안에게 친위대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벌써 끝났겠지. 우린 목표물만 제거하면 돼.”

 

마차 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벨로나가 공주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카시안이 친위대와 대치 상황에 놓이고 칸델도 마차에서 멀어지자 그녀들은 벨로나의 신호에 맞춰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공주들은 숲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공주님! 뭐하시는 거예요!”

공주들이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소리에 놀란 카시안이 큰소리로 외쳤다.

 

쫓아라! 목표물이 사라진다!”

친위대들이 다급하게 그녀들을 쫓기 시작했지만, 병사들과 얽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자신을 막던 친위대를 황급히 밀치고 마차 밖으로 나온 카시안이 공주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공주님, 숲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돌아오세요!!”

 

카시안의 절규에 벨로나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뜨겁게 얽혔다.

벨로나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언제나 냉정하고 차갑던 그의 눈빛이 두려움에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뒤쫓아오는 친위대들을 본 순간, 벨로나는 이를 악물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려 숲으로 뛰어들었다.

공주님!!!”

카시안의 날카로운 외침이 숲을 뒤흔들었다.

 

 

카시안은 분노를 삼키려는 듯 이를 악물었지만, 상처 입은 표정만은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칼에 묻어 있던 피를 거칠게 털어낸 뒤, 옷을 대충 찢어 피가 흐르는 손을 감쌌다.

칸델! 공주님들을 찾아올 테니 여길 맡아.
저 새끼들 한 명이라도 숲으로 보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 부대장님.”

 

카시안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숲을 향해 달려갔다.

숲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숲 입구에서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었다.

순간 자신을 돌아보던 벨로나의 눈빛이 떠올랐다.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그저 그녀를 당장 보고 싶었다.

카시안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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